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만 왕조 (문단 편집) == 기원과 건국 == 사만 가문은 자신들의 시조를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 시절의 전설적인 장군이자 찬탈자였던 [[바흐람 추빈]]이라고 말했으나 그것 자체는 확실하지 않다. 일단 사만 조의 확실한 실질적인 시조인 '''사만 쿠다'''가 트란스옥시아나에서 그 세력을 확립한 기록이 있으며, 그가 [[파르티아]] 제국의 대가문이었던 미흐란 가문 소속 혹은 미흐란 가문과 어느 정도 관련된 것으로 추정할 기록적인 단서가 있기에 사만 가문 역시 파르티아계 토호 혈통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사만 가문은 오늘날의 [[부하라]]~[[사마르칸트]] 등지에서 나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토착 호족이었다. 사산 왕조가 [[정통 칼리파 시대|라쉬둔 왕조]] 이슬람 제국에게 멸망당하면서 사만 가문은 이슬람 제국에게 고개를 숙이고 그 휘하로 들어갔으며, [[우마이야 왕조]] 시기를 거쳐 [[아바스 왕조]] 시기에 이르기까지 [[수니파]]로 개종하고, 지방 토호로서의 입지를 계속 유지하는 것에 성공했다. 사만 가문이 아직 [[아바스 왕조]] 통치하의 충실한 신하로 있었던 사만 가주 '''아사드'''[* 사만 왕조의 건국 시조인 이스마일 1세의 조부.] 시절, 아사드의 네 아들들인 누흐, 아흐마드, 야흐야, 일야스가 각기 군세를 이끌고 반란군 토벌에서 큰 공적을 세우자 [[아바스 왕조]]는 이들에게 트란스옥시아나 각지에 있는 상당한 세습 영지를 하사했다. 이후 얼마 안가 아바스 조는 연속적인 내전과 반란으로 급격하게 쇠락했는데 반면 영지가 크게 늘어난 사만 가문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아흐마드'''의 아들인 '''이스마일 1세''', 즉 [[이스마일 이븐 아흐마드]] 시기에는 아바스 조가 너무도 크게 쇠락하여 자그로스 산맥 이동으로는 거의 모든 지배력을 상실해버렸기에 사만 왕조의 대두를 막을 수 없었다. 차근차근 주변 이란계 토호들을 굴복시키고 아랍계 총독과 관료들을 제거하거나 복속시킨 사만 왕조는 이스마일 1세 시기에 사실상 아바스 조로부터 독립했으며 트란스옥시아나 전역을 장악하면서 그 근거지를 부하라에 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